『길잡이 오쇼』그러므로 주의하라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잘못을 범한 사람이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또 그 마음을 씻지 않으면
업보(業報)가 자신의 몸에 돌아오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많은 잘못을 범한 사람이
그것이 그릇된 줄을 알고 자신을 고쳐 선을 행하면
업보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니
마치 환자가 땀을 내고 점점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악의에 찬 욕을 하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며 그에게 화내지 말라.
악한 사람은 남을 욕함으로써 스스로를 욕하는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도를 지켜 큰 자비를 행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일부러 찾아와 나를 비난했다.
그러나 내가 침묵을 지키고 대답하지 않았더니
그는 비난하기를 그쳤다.
그때 내가 그에게 물었다.
"만일 당신이 이웃에게 선물을 가지고 갔으니
그가 그것을 받지 않는다면
그 선물은 다시 그대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은 그 욕을 당신 자신에게 한 것이다.
그것은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고,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당신은 스스로 범한 죄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르므로 주의하여 악한 일을 멈춰라."
그대는 세개의 층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어린이, 부모, 성인인데 어느 것도 진정한 그대는 아니다. 그대는 어린이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며, 성인도 아니다. 그대는 초월적인 어떤 것, 궁극적인 어떤 것, 이 모든 투쟁과 모순되는 부분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다.
선택하지 말라, 다만 유의하라. 주의 깊게 행동하라. 그러면 그대는 어린애(childish) 같은 존재가 아니라 어린아이(child)같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존재와 어린애 같은 존재의 차이를 기억하라. 그 둘은 다르다.
주의 깊게 행동한다면 그대는 어린아이처럼 될 것이다. 어린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깊게 행동한다면 모든 계명을 따르지 않아도 저절로 그 계명들을 다르게 될 것이다. 주의함 속에서 행동한다면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합당한 것이다. 합당함이야 말로 참으로 이성적인 것이다.
기억하라. 합당함(reasonableness)은 이성적임(rationality)하고는 다르다. 합당함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합당함은 비이성적임마저도 삶의 한 부분으로써 받아들인다. 이성은 단조롭다. 이성적임은 단조롭다. 합당함은 사물의 양극성을 인정한다. 합당한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다.
- 오쇼라즈니쉬의 42장경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