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길찾기/『空』불교와 명상

『길잡이 오쇼』마법을 넘어선 진리

개요강 2012. 7. 24. 15:02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한 명의 착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악한 사람 백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천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수다원에게 공양하는 것이

오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사다함에게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백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아나함에게 공양하는 것이

사다함 천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아라한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나함 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벽지불(擘支佛)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십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삼세제불(三世諸佛)에게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백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생각 없고, 머뭄 없고, 닦음 없고, 얻음 없는 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삼세제불 천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장자의 꿈

 

  나비가 실재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장자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당황했던 자, 나비를 지켜본 자, 장자를 지켜본 자, 장자가 나비가 되는 것을 지켜본 자, 나비가 장자가 되는 것을 지켜본 자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켜봄, 각성, 관조만이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마야라는 관념은 이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비실재이고, 오직 보는 자만이 실재이다. 보는 자를 향해서 끝없이 나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마술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그대는 하나의 마술의 세계를 다른 마술의 세계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은 허위 속에서 산다. 사람들은 그들의 허위를 철학이라고 부른다.

  프로이드는 매우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인간은 허위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에 한해서 프로이드는 옳은 것 같다. 거짓 없이 살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짓은 그대의 삶을 순조롭게 만들고, 거짓은 윤활유같은 작용을 해서 더 쉽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준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조금 더 순조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맡긴다. 어떤 사람은 세상 너머에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여기서 우리는 불행하지만 거기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를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막스는 말했다. 그것도 어떤면에서는 진실이다.

  모든 희망은 허위이다. 미래에 대한 모든 기대는 허위이다. 그렇다. 종교는 아편일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공산주의란 이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무엇, 일어날지도 모르고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도록 만드는 무엇, 그대에게 목적의 느낌을 주는 그 무엇, 그대가 영웅이라는 느낌을 주는 그 무엇, 그대의 에고에게 양분을 주는 그 무엇이다.

 

출처: 오쇼 라즈니쉬 42장경 중

 


 

 

<내 갠적인 생각> 이해되지도 않을 개소리니 그냥 한쪽귀로 듣고 흘려주세요..

모든 희망적인 것을 받아들일 때에는 반드시 나를 탁탁 치는 느낌이 전해진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의 길을 받아들일 때에는 조용히 스며든다. 전신으로...육체와 영혼과 정신에...

마치 녹아드는 느낌과 같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바로 탁탁치는 느낌을 주는 희망적인 것의 함정이라는 넘이다.

나도 불과 얼마전 그 함정에 걸려들었고 그것이 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몸이 안좋아지고 난 후에야...

그 탁탁치는 느낌의 희망에 이끌려 내 기운들은 어딘가로 분산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에너지들을 모조리 빼앗길 뻔했다. 희망이란 넘에게...

그래서 난 그 희망에게 배신감을 느꼈었다.

한마디로 그 탁탁치는 느낌은 내 가슴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과 내 육체와 내 정신 이 모든 것들이

그 텍스트들을 그리고 그 에너지와 정신들을 밀어내고자 하는 노력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인간이란 자신의 내면의 변화조차 깨닫지 못한다.

몇일이 지나서야 그걸 깨닫게 되었다. 길이 아닌 희망이란 것이 사로잡혀 내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모르고 무언가에 홀린 듯 그 텍스트들을 내 몸 구석구석 쑤셔넣으려고 했었다는 걸...

 

거기서 깨달았다. 희망과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을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르다는 걸 말이다.

이걸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시간날 때 포스팅 따로 하겠습니다.